980606 백두대간 길(조침령-한계령)
떠나기 전 날의 설레임.
언제쯤인가 우리들의 꿈은 이루어질 것인가 ?
가슴마저 아픈 유월의 하늘을 본다. 그리고 추적이면서 내리는 비.
시작이 두려워서 텐트 칠 엄두도 갖지 못하고 방에서 뒹굴뒹굴.
다음날 아침녘의 깨어 있었던 시간들.
계절의 순환은 이렇게 빨리 시작 되었고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
조침령 초입부터 들머리를 몰라서 헤메였다.
전 날 내린 비로 인해 어깨의 높이만큼 성장한 풀들이 성큼 앞 길을 막아 선다.
가야만 하는 길. 바쁘게 발걸음질을 하다 보니 어느새 바지는 젖어 오르고 있었고 등산화에는 물이 찌걱이고 다행이 바람은 불지 않는다. 얼마쯤이었을까. 대간을 향한 우리의 꿈들의 조각은.
뒤로 멀리했던 가까운 사람들의 얼굴들을 떠올리면서 젖은 바지를 힘겹게 추스리며 걷는다.
성큼 커 버린 잡목들의 성장.
몸을 숙이면서 나가도 힘들게만 느껴지는 대간 길.
그저 가야만 하는 의무감이었을까 ?
잡목에 싸여 앞 길은 보이지 않는데.
두 시간 여 걷다 보니 양수발전소 상부댐 공사 현장이 보인다. 한 쪽의 산면을 완전히 깍아 내린 곳에서 차량들은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고 신들에게 도전을 한 인간들의 바벨탑에 대한 의지를 생각한다. 좋은 말로 우공이산이라 했던가. 갈지자로 난 산길을 보면서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본다.
우리의 삶은 얼마쯤에서 끝이 날 것인가 ? 내내 걸으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타박이면서 걷는 것도 삶을 위한 자신의 존재 확인을 위한 버거운 노력이라고 한편으로 생각을 해 본다.
북암령에서의 길 찾기.
역시 쉬운 생각은 가벼운 행동을 부른다. 준비의 소홀함을 탓하는 듯 길을 잘못 들어서 계곡 쪽으로 빠지고 말았다. 길이 없음을 알고 늦게서야 깨달은 우리들의 무지함을 인식한다.
앞이 보이지 않은 이 시대의 황량함. 길라잡이마져도 다른 곳으로 뛰어 드는 시대의 어설픔과 아울러 한 없는 슬픔을 한 편으로 느낀다.
북암령을 조금 지나서 굶주렸던 곡기를 채우고 다시 발걸음을 향한다. 가본 적이 없는 곳에 대한 낯설음의 미묘한 흥분.
단목령을 지나면서 계속적으로 생각을 한다.
우리들의 꿈은 언젠가 이루어 질 것인가를. 그리고 오름길.
아홉시간 이상의 긴 길에서 다시금 만난 오름길.
얼마나 지났을까 ?
유년시절의 붉게 채색되었던 꿈을 생각하며 거친 호흡을 내뱉는다.
계속되는 오름길.
결국은 점봉산 정상에 올랐다. 안개로 인해 주변의 풍광을 볼 수 없었고 죽은 자의 넋을 위로하는 표석 옆에 우두커니 앉아 동생을 생각한다.
삶이란 이렇게 버거운 것일까.
날은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고 서둘러 하산.
그러나 어둠은 이미 우리를 앞질러 왔었고 판단마져 흐리게 하는 밤의 시간이 찾아 왔다.
살아 있음에 대한 확인 의식.
아무거나 먹기.
다시 아침.
전 날에 비해 암릉 지대가 눈 앞에 다가 선다.
가벼운 산 오름.
다가 서는 바위들을 힘겹게 오른다.
얼마쯤 이었을까.
차 소리도 가깝게 들리고 사람들의 모습이 엄청나게 크게 보였던 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