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1223 교토에서(여행 2일차 기록)
어제 저녁에 비가 조금씩 내렸다. 이른 아침 일찍 깨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창 밖으로 빗소리를 조금씩 들었다. 비가 내리는 오늘의 일정을 어떻게 짤 것인가에 대해 여러 가지 상념이 앞선다. 비를 맞고 여행할 수도 없고. 타국에서의 잡다한 생각들. 아침나절 식사 후 유스호스텔(우타노)에서 한국인 여학생 2명을 만났다. 어제 나라에 갔다가 오늘은 교토를 떠난다나. 짤막한 정보를 얻고서 타국에서의 까마귀를 만난 즐거움을 함께 했다. 다행히 비는 그치고 유스호스텔에서 버스 일일 승차권을 700엔에 구입하고 첫 목적지인 용안사에 갔다.
석실에서 보이는 정원의 돌들. 조지훈 선생의 글 “돌의 미학”을 머리 속으로 떠올리면서 다시금 우주 형상의 축소판이라는 정원의 돌을 바라보았다. 동행한 일본인들은 안내방송에 귀를 기울이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고 감탄의 말을 그치지 않았고 나는 주위를 배회하고 있었다. 그 뒤 주변에 위치한 금각사를 걸어서 갔다. 갑자기 배가 아파서 화장지를 사려고 상점에 들어가 이리저리 살폈으나 없었고 혹시나 해서 화장실 안까지 들어가 봤지만 역시 없었다.
금각사. 금색모양. 황금빛. 인공의 색채가 많이 가미된 (원래의 것은 불에 타고 후대에 재건됨) 외형의 모습과 주변의 호수와 어우러진 정경을 뒤로하며 다시 교토역으로 나와서 동본원사로 향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일본의 축소지향의 형태가 아닌 굉장히 큰 절이었다. 입구에서 한 아이가 비둘기 먹이를 사자 수많은 비둘기들이 아이를 둘러싸고 그야말로 먹이를 빼앗아 먹고 있었다. PC통신 여행동아리에서 읽은 대로 나도 매점 비슷한 곳에 들어가서 오차를 석 잔이나 마셨다. 그것도 공짜로. 여자머리카락으로 짠 밧줄도 보고 나와서 교토박물관 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지도상으로는 가까운 것 같았지만 꽤나 걸렸다. 길을 가다가 길을 잘 알려 줄 것 같은 젊은 대학생에게( 여행시 길을 물을 때 상대 편의 인상을 잘 살피는 것이 상당히 중요함 ) 물었다. 어눌한 영어로 서로간의 의사소통을 하고 그가 앞장을 서서 자기를 따라 오라고 하였다. 나는 속으로 판단이 옳았음에 쾌재를 부르고 ( 대부분의 일본인은 정말로 친절하다. ) 따라 나섰다. 그 학생은 박물관 앞쪽에서 방향을 일러주고 재미있게 여행을 하라는 작별인사까지 하고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박물관을 가는 도중의 시간은 12시를 조금 넘었다. 햄버거 가게를 지나면서 들를까 말까 고민은 하다가 그냥 지나쳐 버리고 말았다. 비극의 시작.
박물관에서 여러 가지 많은 유물을 통하여 일본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반면 한편으로 의심이 났던 것은 많은 중국의 유물과 조선왕조의 유물들을( 박물관 측의 설명에 의하면 장소가 협소해서 다 전시하지 못했다고 함 ) 어떻게 준비했을까 하는 점이었다. 우리의 고려, 조선 시대의 자기가 보이고 소장자인 일인 이름을 보면서 묘한 설움을 느꼈다. 그리고 마지막 전시실에 있는 일본도. 전시실 전체가 일본도로 채워져 있어서 보기에는 좀 섬뜩했다. 관람 중 한국 여행자를 만나서 관광정보를 얻었다. 박물관을 나오니 시간이 3시를 향하고 있고, 교토역 근처에서 여행자 식당(tourist restaurant)을 찾으려고 했지만 찾지를 못하고 청수사로 갔다. 외형의 방대함을 느끼게 하는 절에는 수많은 선남선녀들을 볼 수 있었고 종 앞에서 줄을 잡고 종을 치고 소망을 빌기 위해 돌을 던지고. 심지어는 개를 위한 곳도 있었다. 청수사에서 내려오다 여학생이 사진을 부탁해서 찍어 주었다. 주변에 여러 기념품을 파는 가게가 있어서 토산품 가게에 들어가 도자기로 된 작은 잔을 샀다. 거금 3,000 엔. 에고, 비싸다.
기온 주변을 배회하면서 식당가를 찾다가 포기하고 유스호스텔로 향하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다시 내려서 슈퍼마켓에 들러 김밥을 샀다. 가격표에 450 엔이라고 써 있어서 450 엔을 내니 뭔가를 더 달라고 요구하는 눈치이다. 탁스, 탁스(tax) 하기에 간신히 그 의미를 생각했다. 이른바 일본에서는 3%의 세금이 붙는다는 것을 알았다. 글을 쓴 지금의 시점에서는 이것을 2% 더 인상을 한다고 하여 오르기 전에 물품을 사려는 모습을 찍은 신문의 사진을 보았다. 버스를 기다리며 날은 조금씩 어두워지고. 사실 일본은 해가 일찍 뜨고 일찍 지기 때문에 도심지를 제외 한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오후 7시 이후에는 대부분의 상점이 철시하기 때문에 주의를 요한다. 시간은 6시를 넘어 가고, 점심을 먹지 못한 배고픔으로 인해 어둠을 틈타 김밥을 하나 둘 씩 꺼내서 먹다 보니 버스가 와서 탔다.
유스호스텔에서 오늘의 하루를 생각해 보았다. 하루 종일 걸으면서 느끼는 허기와 이틀째이지만 벌써부터 고독감이 밀려 왔다. 반면 밤 시간에 대화실에 들렀다가 이야기를 나눈 일본 학생들과의 즐거움이 외로움을 밀어낸다. 목욕탕에 들러 몸무게를 재 보니 3키로나 빠졌다. 근래 보기 드문 신기록이다. 내일은 끼니 거르지 말고 다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