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흔적

070321 뜀뛰기 - 그 괴로움에 대하여.

바람동자 2008. 6. 18. 21:13

 1.

 2월달 이후 연일 계속되는 송별연에 이미 몸은 찌들어져 있었지요.

뜀뛰기 날짜는 흐느적이며 어느덧 다가 오고 번호표와 기념티를 받으니,

또 한 해가 시작되었음을 실감을 했지요.


 2.

  아침 4시에 일어나 뒤적거리며 밥솥의 찰밥을 조금 먹고

버스로 향합니다. 연습 부족이라는 내심의 치명적 요소가

사람의 행동을 위축하게 만들지요.

 광화문 앞.

   전년도의 그 쌀쌀함에 비해서는 많이 좋아 졌지만

한기를 느낍니다. 많은 무리 중에 나도 그저 한 사람이겠지요.

출발 선상에서 부정직한 마음 주문을 걸어 최면을 걸어 보지만

마음이 언제나 문제이지요.

 한무리가 되어 출발선을 지나 갑니다.

한 해의 시작이 되었음을 몸에게 알리는 통과의례지요.

10키로 가는 사이에 예년과는 다르게 2번씩이나 화장실을 다녀 옵니다.

잠시 일행으로부터 떨어져 있다는 생각에

정직한 몸은 열심히 움직입니다.


 3.

   아, 왜 이렇게 힘이 드는 것이여?

도대체 왜 뛰는 것이여 하면서 잡다한 생각을 하지만 답은 찾을 방법이 없고

가다가 20키로를 넘으니 원초적인 질문에 답을 못해서인지

뛰기가 싫어 집니다.

 한편으론  청계천변 저쪽으론 선두그룹들이 뛰는 것이 보입니다.

보니 이봉주선수 3위로 뛰고 있네요.

25키로 넘어선 마음이 잡혔는지 글 또 뛰어 보자는 생각을 갖게 되고,

참 마음 먹기가 이렇게 힘이 들고,

마음 먹은 뒤에는 편안함이 찾아 오는 것임을 또 느낍니다.


 4.

  잠실대교를 건너갑니다.

느릿한 강바람을 측면으로 맞으면서,

정태춘이 얘기한 환멸의 90년대를 생각하면서

오른쪽으론 골인지점인 잠실주경기장이 눈에 들어 옵니다.

눈에 들어 오면 뭐하나요.

 주경기장을 가려면 뻔히 보이는 길 놔두고 구불거리면서

아직도 8키로 정도가 더 남아 있는데요.

몸에선 고통의 신호를 보내지요.

마음은 무시를 하고, 35키로 지점에서 잠시 쉬었다가 스트레칭 좀하고

다시 40키로 지점에서 스트레칭. 오른쪽 다리가 구부러지지 않아 애를

먹었지요. 막판 힘이 떨어 짐을 느끼고

조금씩 걷습니다. 그래 내가 이거해서 먹고 살고 아닐건데,

왜 애를 써서 뛰냐는 마음이 몸을 지배했지요.

 운동장이 가까워 질 무렵,

오른쪽 다리에서 작은 경련이 일면서

신호를 보냅니다.


 5.


  또 뛰었습니다. 항상 생각하는 것은 좀 더 연습을 했더라면 하는 생각.

그렇지만 시간이 그렇게 많이 나는 것도 아니고,

대회에 참가하는 것을 연습으로 삼는다는 교만한 마음도 가져 보았지요.

 머리 속으론 스메타나의 현악4중주 1번의 악장을 떠올렸지요.

작곡가로서 생명이랄 수 있는 청각을 상실했던

그가 생각했던 지난 시절의 행복은  무엇이었을까요?

  소년시절의 낭만적 동경과 청춘의 나날들, 첫사랑에 대한 행복한 회상들.

가볍게만 지나가 가버린 지난 날에 대한 회상이지요.

그리고, 지난 시절 나에게 있어서 그것은 무엇이었던가를 생각해 봅니다.

  그리워라. 다시 갈 수 없음에 부르는 노래들.

 "캣츠"에서 늙고 쇠락한 고양이 그리자벨라는

다른 젤리클 고양이들에게 천대를 받으며

과거의 일들을 생각하면서  노래를 부르지요.

 행복했던 때의 기억. 메모리. 다시 돌아 와 줘요.

하면서 말이지요.


 6.

  비 내리는  흐린 날.

수업이 없는 지금, "플라멩고 판타지" 음반 듣고 있습니다.

키타와 어울린 목소리, 손뼉의 동작들.

 정적인 면 보다는 오후 한 나절을 몸을 움직이게 합니다.